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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불규칙 근무자 과로, 노동부 고시로 판단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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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35회 작성일 24-05-2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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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불규칙 근무자 과로, 노동부 고시로 판단 안 돼”

근무시간이 불규칙한 노동자의 과로 여부를 고용노동부 고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손인희 판사는 건설현장소장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 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건설현장에서 소장으로 인사관리를 하는 동시에 비계공 등 육체적 노동 강도가 높은 업무도 수행해 왔다. A씨가 갑자기 쓰러진 건 2022년 2월28일. 퇴근 후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병원에 실려 가 뇌출혈·반신마비 등을 진단받았다.

A씨는 과로로 인한 업무상 재해라며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A씨측은 불규칙한 근무시간으로 수시로 연장·야간노동을 하는 등 휴일이 부족했던 점, 쓰러지기 직전 연속 10일을 근무하는 등 상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점 등을 이유로 업무 관련성을 주장했다.

공단은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A씨가 휴무일 다음날 정상근무한 뒤 집에서 쓰러진 점, 돌발상황이나 급격한 업무환경 변화가 없으며 근무시간이 노동부 고시상 과로 기준에 미달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A씨에게 기저질환인 고혈압과 뇌동맥류가 내재돼 있었던 점도 불리한 사정으로 참작됐다.
“10일 연속 업무 고려하면 ‘과로’”
법원은 A씨측 손을 들어줬다. 노동부 고시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A씨의 과로 여부를 판단한 근로복지공단과 달리 법원은 A씨의 불규칙한 근무시간에 주목했다.

A씨가 쓰러지기 전 일주일 동안 업무시간은 53시간이다. 노동부 고시상 과로로 인정되려면 A씨가 쓰러지기 전 12주간 1주당 평균 업무시간인 45시간24분보다 30% 이상 증가해야 하는데,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뇌혈관 질병 등의 업무상 질병 여부 결정의 기준이 되는 노동부 고시상 단시간 동안 업무상 부담이 증가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강 판사는 업무시간이 적게 계산됐다는 A씨측 주장을 인정했다. 강 판사는 “A씨가 쓰러지기 전 연속 10일 근무한 기간을 고려하지 않고 1주 단위로 1주당 평균 업무시간을 산정했다”며 “2022년 2월경 A씨 근무일이 이전보다 적었던 영향으로 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상병 발병 전 일주일 이내 업무의 양 및 12주간 1주 평균 업무 양이 적게 산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연속 근무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A씨가 쓰러지기 이틀 전 10일간 연속으로 일한 시간은 91시간30분이다. 1주당 평균 업무시간은 64시간3분으로, 앞선 45시간24분에 비해 약 40% 이상 증가한 수치다.

강 판사는 “고시에서 정한 일정 기간 내 업무량 증가 및 업무시간 요건은 업무상 환경 변화나 과로 여부를 판단하는 데 하나의 고려요소일 뿐 절대적 판단기준이 되지 않는다”며 “A씨가 상병 발병 직전 업무상 부담이 증가해 뇌혈관의 정상적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 과로를 유발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직업환경의 “단기간 업무시간 변화로 발병”
A씨의 기저질환에 집중했던 임상의학과와 달리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에서 A씨의 불규칙한 근무시간 등을 언급하며 단기간 업무시간 변화 등 업무로 인해 상병이 발병한 것으로 본 점도 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을 담당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A씨의 기저질환 및 과로로 볼 수 없을 근무시간 등 때문에 어려운 사건이었다”면서 “다만 단기간이라도 근무시간이 증가한 점을 강조해 기존의 결과를 바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요양급여 사건에선 임상과보단 업무 관련성을 부각할 수 있는 직업환경의학과 감정이 더 유리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강석영 기자 getout@labortoday.co.kr